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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로 Port Kembla ~ Shellharbour
    자전거 2019. 10. 1. 02:00

    시드니 기차는 일요일 하루 종일 $2.80으로 상당히 장거리를 갈 수 있다. 자전거를 싣고 기차 지도를 보고 여기저기 발도장을 찍는 중이다. 이번에는 Port Kembla로 출발. 처음 들어보는 역이었는데 바닷가 근처고 막연히 자전거 타기 좋을 것 같아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목적지였다. 

     

    기차 안에서 찍은 시드니 기차 노선표

    Redfern 역에서 Wollongong행 기차로 갈아타고 Wollongong에서 다시 Port Kembla행 기차로 갈아탔다. 다 합쳐서 3시간 정도 걸린 듯. 중간에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빼면 기차는 2시간 반 정도 탄 것 같다. 기차에서 책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집중이 되지 않다가도 기차만 타면 술술 잘 읽힌다.

     

    장거리 기차는 비행기 좌석같이 발 놓는 곳이 있어서 편했다. 

     

    종점이었던 Port Kembla에서는 나를 포함 딱 세명이 내렸다. 

     

    6시 반 기차를 타고서 Port Kembla에 도착하니 9시 반. 역 바로 근처에 공장만 있어서 좀 당황했는데 언덕을 넘으니 곧 주택가가 나왔다. 길을 잃어서 헤매고 있는데 이웃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목소리를 높여 싸우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쓰레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이 평온해 보이는 풍경과 대조를 이뤘다. 외곽 도시일수록 동양인이 별로 없기도 해서 조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기차들이 쉬는 곳인듯. 
    역 근처가 바로 공장지대였다.
    정체가 몹시 궁금했던 연기. 

     

    기둥 디자인이 아기자기 귀여웠다. 

     

    자전거 탈 때 내리막이란 = 행복 

     

    동네에 서커스가 와있었다.

     

     Illawara 호수에 도착 -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배가 고파져서 서브웨이를 먹으며 쇼핑몰에서 좀 쉬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방황하기 시작. 지도를 보지 않고 바닷가를 찾았는데 돌고 돌아서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가 겨우 바닷가가 아닌 호숫가에 도착했다. 확 트인 시야 속 파란 하늘과 호수를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행복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벤치에 앉아서 과자를 먹고만 있어도 그저 좋았다. 하늘이 예뻐서 파노라마 사진을 찍기도 하고 과자를 노리고 모여든 갈매기를 놀리기도 하고 그냥 앉아있었다. 이렇게 좋은데 사람은 거의 없어서 혼자 호수의 경치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과자말고 물고기를 먹으란 말이다. 

    그러다가 천천히 따라오는 개를 기다리며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남자가 지나갔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너무 아깝다는 말을 시작으로  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봤다.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하니까 Shellharbour로 가는 자전거 코스가 있다며 구글 맵을 보면서 알려줬다. 바닷가를 따라서 가는 코스인데 5km 정도고 다리를 두 번 건넌다고 했다. 개가 빨리 가자고 짖기 시작해서 남자는 곧 떠났고 귀가 얇디얇은 나는 그 남자의 말대로 (한쪽 눈에 백내장이 있는 15살 개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Shellharbour를 향해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특별한 계획 없이 그저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쏘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바닷가라는 목표가 생겨서 오히려 신이 났다. 

     

    하늘색이 유난히 파랗게 느껴졌다. 
    대로를 따라가다가 주택가로 가기도 했다. 
    호수가 보이면 잠깐씩 쉬었다. 
    사진에 있는 다리를 건너갈 계획이었다. 
    펠리칸은 천적도 없고 제일 팔자 좋아보였다. 
    바닷가를 옆에 끼고 달리는 건 처음이었다. 날씨가 진짜 좋았다. 
    해변이 보이면 내려서 쉬었다. 아직 물이 차가워서 물에는 못 들어감. 
    낡고 작은 내 자전거. 
    해변가는 걷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누군가와 말없이 걸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아까 남자가 알려준 두번째 다리. 작다고 하더니 정확한 설명이었다. 
    오후 세시.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해변가에 있던 평상에 엎드려 있었다. 
    험난했던 오르막 길. 
    오르막길의 끝에는 석양을 배경으로 한 신나는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갈 때쯤에는 Port Kembla에서 너무 멀어져 있어서 Shellhabour Junction 역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오르막길이 작은 시련의 시작이었다. 하필 오늘 철로 공사를 해서 기차가 아닌 버스가 다녔던 것도 있지만, 버스를 놓쳐서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Junction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큰 역인 줄 알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건 나랑 어떤 아저씨 달랑 둘. 거기다 벤치는 하나. 나는 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아저씨는 뻘쭘하신지 한참을 서 있다가 나중에야 같은 벤치에 앉았다. 뻘쭘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의 출신지를 묻고 (한국 출신이라면 꼭 나오는 질문 Are you from North or South?) 직업을 묻고 스포츠 얘기를 하다가 할 말이 없어져서 고양이가 있다고 했더니 자신은 두 마리 키운단다. 고양이 얘기를 하다 보니 버스가 왔다. 나도 모르는 사람과 그리 자주 대화하는 편은 아닌데 이 분은 나보다 낯가림이 더 심한지 버스에 타면서 서둘러 작별인사를 했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해서 한 참을 같은 버스에 있었는데도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나보다 더 내성적인 사람은 처음 봐서 신선한 느낌이었다. 

     

    Wollongong에서 기차를 놓쳐서 1시간 정도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다.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에 가까운 시간. 얼얼한 엉덩이를 제외하곤 나름 성공적이었던 무계획 여행이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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