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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 아직은 못하겠다
    단상 2019. 10. 30. 19:14

    오스카가 구강암이라고 알게 된 것이 이주가 조금 넘었다. 첫 며칠은 눈물만 나왔다. 그동안 오스카의 작은 변화들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는 자책감에 너무 괴로웠고 지금도 그렇다. 수의사는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 난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동물병원에 데려간 것이었는데 수술을 권하지도 않고 그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 몰랐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다 내게 원인이 있다. 작년 이맘때부터 직장일이 너무 힘들어서 번아웃 상태였고 내 관심은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궁리하기 바빠서 오스카가 조금씩 살이 빠지는 것도, 입안이 곪았던 것도 몰랐다. 내가 만지는 것을 싫어해서 도망을 가더라고 붙잡고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오스카가 싫어한다는 핑계로, 할퀴면 아프다는 핑계로 귀찮다고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달리기를 하고, 하루는 운동을 하고, 중국어 수업을 듣고, 교회 찬양팀에서 봉사를 하고, 자기 계발 책을 읽고, 팟캐스트를 듣고, 자전거 여행을 다니고, 나만 바쁘게 살았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인들에게 은근히 자랑도 늘어놓았다. 

     

    행복이 모래성같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오스카의 수명이지만 아직 4-5년은 거뜬하리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입 빼고는 다른 부분은 다 건강해서 더 죄책감이 든다. 내가 더 이빨을 잘 관리해주었어야 했다. 오직 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생명인데, 내가 너무 소홀이 했다. 사료도 더 좋은 걸로 사주고, 병원도 더 자주 가야 했다.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갔었야 했는데, 왜 그 돈이 아깝다고 느껴졌을까?

     

    오스카의 상태를 알고 나서, 출근을 한 시간씩 일찍 하기 시작했다. 그 대신 퇴근 후 집에 오면 일체 일에 손을 대지 않고 오스카와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엉덩이를 두들겨 달라면 두들겨 준다. 몇십 번 몇백 번이고 두들겨 준다. 전에는 귀찮게 느껴졌던 것이 너무 미안하다. 쓰다듬어 줄 때마다, 귀여운 뒤통수를 바라볼 때마다, 앞으로 몇 번 더 만지고 바라볼 수 있을까 한없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운동도 취소하고, 중국어 클래스도 당분간 가지 않기로 했다. 매일 보던 드라마도 줄이고, 도서관에서 빌린 자기 계발서도 다 반납했다. 지금은 오스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일상의 평온함의 근간, 내 외로움을 채워주는 존재, 이제야 이 작은 고양이의 진정한 크기를 알았다.

     

    주변에 애묘인이 거의 없어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더 가까운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많기에 내 슬픔이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을 잘 안다. 이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 잘못이기에 내가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한다. 아마 평생 안고 가야 할 죄책감이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내 곁에 조용히 있어줘서 너무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이 작은 존재. 말로만 사랑한다고 했던 것이라고 깨달았다. 내 사랑이 너무 작았다. 더 철저히, 귀찮음을 감수하고, 핡큄을 감수하고 돌봐야 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무심코 나오려 할 때마다 다시 삼킨다. 내가 했던 사랑이 너무 부족해서 감히 그 단어를 쓰지 못하겠다. 대신 진심을 담아 다른 말을 해준다. 많이 좋아해. 정말 대견해. 잘 버티고 있어. 넌 정말 대단해. 너무 예뻐. 오스카 앞에서는 울먹이지 않고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 

     

    어제는 새벽에 오스카의 신음 소리에 잠이 깼다. 엄청난 아픔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아직 식욕이 있고, 마당을 돌아다니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두들겨 달라고 하고, 화장실도 잘 가린다. 아직 생명이 있다. 아직 일상이 있다. 아직 보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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