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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한 번에 하루씩단상 2019. 11. 15. 03:51
A day at a time이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한 번에 하루씩이라고 번역되는데 영어 표현이 더 직감적으로 와 닿는다. 어제와 내일은 다크 모드처럼 안 보이게 하고, 오늘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는 요즘이다. 오스카를 병원에 데려간 게 딱 한 달 전. 한 달 동안 오스카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아졌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식사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구강암인지라 입 안이 헐어서 따가워서 많이 못 먹게 되었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그냥 쳐다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건강할 때 맛있는 음식, 비싼 사료를 더 많이 사줄걸 후회해봤자이다. 뭐라면 안 따가워하며 먹을 수 있을까? 사료용의 생고기를 끓여서 육수를 내보기도 하고, 전에 먹던 사료를 한 번 줘 보기도 하고, 사람용 닭날개를 삶아서 국물도 줘보고 고기도 줘보았다. 평소에 옥수수를 좋아했었던 게 기억나서 조금 줘보기도 했다. 오스카는 다들 조금씩 맛은 보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는 모습이 보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입에서 침과 피가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바닥과 이불 곳곳에 자국이 남아서 부지런이 닦고 빨아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전혀 귀찮지 않은 것은 이게 다 내 책임이기 때문이다. 오스카가 아프게 된 것도, 그리고 지금 오스카가 계속 아프고 있는 것도 다 나의 선택 때문이다. 의사는 안락사를 권했지만, 난 한 달이 지난 아직도 오스카를 보내주지 못하고 있다. 오스카는 아직도 옛날 버릇처럼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 뭐라도 얻어먹으려고 기웃거리고, 높은 테이블에도 펄쩍 잘 뛰어올라 간다. 엉덩이를 치켜세우고 엉덩이 팡팡을 해달라고 칭얼거리는 게 일과이다. 먹는 낙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오스카의 일상의 기쁨이 조금은 남아있다. 이러면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나라면 어떨까? 나중에 내가 나의 목숨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다면 삶의 종료를 선택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까?
하루만 생각한다. 오늘은 밥 먹고, 약도 먹고, 엉덩이 팡팡도 하고, 조금이라도 기분 좋게 보내보자. 오늘만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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