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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 안녕, 나중에 만나자
    단상 2019. 11. 24. 17:39

    어제는 학생들과 달리기 시합에 참가하느라 외박을 해야했었다. 전부터 약속한 것이기도 하고, 대타를 급하게 구하지 못할 상황이라 참가를 하긴 했지만 오스카가 아픈와중에 집을 비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학생들과 달리기 대회에도 함께 참가하느라 정신없이 보내서 오스카 생각을 많이 못했는데 동생에게 메세지가 와있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짧은 문장이었다. 안락사를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생의 의도는 읽을 수 있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문득 문득 오스카가 떠올라서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이렇게 건강해서 뛰어다니는데 우리 오스카는 집에서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다... 결단을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를 되풀이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달리기 대회를 끝내고 녹초가 된 학생들이 다 잠이 들어서 조용했다. 나도 반 쯤 졸면서 기도를 되풀이 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오스카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아파하고 있었겠구나. 둔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있었겠구나... 집에 와보니 오스카가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음식을 못 먹는 것은 물론 내가 보지 못한 이틀 사이에 물도 제대로 못 마시게 되어 버려 있었다. 내가 집에 없는 사이 집에 다녀간 동생이 엄마에게 이건 동물 학대라고 했다는 말에 드디어 결심이 섰다. 생선이 놓여있는 식탁에 가뿐이 올라앉아서 생선을 먹으려고 시도하지만 먹지 못하는 오스카를 보니 마음이 아렸다. 아직 저렇게 잘 뛰지만, 이제는 물도 못 마시고, 밥도 못 먹는구나. 전에 문의를 하다가 말았던 웹사이트에서 가정 방문 수의사를 예약했다. 가능한 빨리, 그리고 내가 퇴근한 후 시간에 와줬으면 좋겠다고 희망 사항을 적었더니 오늘 당장 몇 시간 후에도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친절하게 예약을 확인해주는 사무원이 자기에게도 오스카라는 고양이가 있는데 아프다는 말을 해주었다. 잠시 후에는 수의사에게도 직접 전화가 와서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예약 시간은 4시 반. 마지막 1시간 반 동안 오스카를 하도 쫓아다녔더니 나중에는 내가 만져주는게 귀찮아서인지 식탁 밑에 혼자 앉아있었다. 수의사가 올 때 도망갈까봐 품에 안고 있었는데, 안는 것을 싫어하는 오스카가 으르렁 거렸다. 마지막 가는데 심기가 불편한 채 보내는 것이 마음이 좋지 않아서 나중에는 바닥 이불 위에 앉혔다. 수의사는 4시 반에 딱 도착했다.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 분이 차근차근 서두름없이 일을 진행해주셨다. 오스카는 첫 마취주사를 맞을 때 아팠는지 으르렁 거리며 도망치려고 했다. 차가운 주사가 아픈게 당연했다. 도망가다가 약기운이 퍼져서 비틀비틀 쓰러졌다. 다시 이불에 눕히고 정맥주사를 맞히기 위해서 앞발의 털을 깎았다. 탈진 상태라서 정맥을 찾는 것이 좀 힘들었다. 물을 못 마신게 며칠 된 모양인데 그것도 몰랐던 것이다. 수의사는 두번째 주사는 심장의 근육을 멈추게 하는데 금방 효과가 나타갈 것이라고 했다. 주사를 맞히고 잠시 후 오스카에게 청진기를 대서 수의사가 심정지 확인을 해주었다. 눈이 감기지가 않는 오스카의 눈을 감게 하려다가 오스카 오른 앞발 살에 발톱이 박힌 것이 보였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몰랐었다. 너무 핥아서 살이 헐어서 내가 만지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발톱이 박혀서 그런 것이었다. 오스카는 고통을 숨기는 것을 너무 잘해서 내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도대체 얼마동안 아픔을 참고 있었을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엄마도 옆에서 같이 울어주셨다. 수의사가 떠나고, 엄마는 한지와 하얀 끈을 가져다 주셨다. 오스카를 한지로 싸서 묶고 아빠가 미리 파주신 곳에 오스카를 뉘였다. 꽃나무 뿌리 바로 옆이기 때문에 예쁜 꽃이 되라고 말해주었다. 이제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안할 우리 오스카. 15년 동안 정말 고마웠고 미안했어. 이기적인 인간이어서 정말 미안해. 네 아픔을 너무 오랬동안 방치해서 미안했어.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그때는 날 용서해주렴. 지금이라도 고개를 돌리면 오스카가 앉아있을 것만 같고,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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