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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 네가 알려주고 간 것들
    단상 2019. 11. 25. 22:33

    아직도 고개를 돌리면 오스카가 근처에 앉아 있을 것 같다. 오스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후, 일상을 오스카에게 맞춰서 조정했었다. 오스카가 어딘가에 숨어서 낮잠을 자는 아침과 낮시간을 피해서,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대신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전에는 학교 일을 퇴근 후에도 도서관에서 몇 시간씩 하고 오곤 했었는데 오스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과감하게 도서관 가기를 멈췄었다. 15년 동안, 유학을 했던 4년 동안에도, 오스카의 존재는 나의 큰 일부였다. 자칭 타칭 애묘인이었고, 힘든 시간 동안에도 내게 감정적인 의지가 되어준 귀한 존재였는데, 요새 몇 년 내가 너무 소홀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오스카는 나를 떠나면서도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 글을 쓰려고 시작만 해놓고 쓰지 못하고 있었다. 오스카만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 울음이 쏟아진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기 전, 오스카가 나에게 알려주고 떠난 깨달음들을 정리해두고 싶었다. 누군가가 이걸 읽고 도움을 받는다면 오스카가 떠나기 전 힘들어했던 시간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생길 것 같다. 

     

    - 고양이는 10살이 넘으면 일 년에 두 번 정기검진을 받는 것 좋은 것 같다. 

    고양이의 수명이 개보다 길다고 방심했다. 요새는 20년 사는 고양이도 많고, 의학도 발달했고, 또 오스카는 큰 질병 없이 건강했던 편이라서 일 년에 한 번의 예방접종을 겸한 정기검진만 받았다. 병원비가 부담되기도 했고, 오스카가 건강해 보여서였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일 년에 두 번은 검진을 받는 게 좋은 것 같다. 6개월 사이에도 큰 병이 생기기도 하는 걸 몰랐다. 고양이의 인생에서 1년은 너무 길다. 

     

    -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부분은 정기적으로 관리하자.

    오스카는 큰 질병이나 부상 없이 건강한 편이었는데, 5살 때인가 송곳니가 한 개 부러진 적이 있었다. 금이 가고 나서 자연적으로 발치가 되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잇몸이 약했던 게 이유였던 것 같다. 더 꼼꼼히 관리했어야 했다. 수의사의 권유로 양치질을 해주려고 손가락 칫솔도 샀었지만 오스카가 너무 싫어한다는 이유로 몇 번 하다가 그만두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아무리 할퀴고 싫어하더라고 하루에 5분 10분 그거 하는 게 뭐가 그리 귀찮고 힘들었을까? 작년에 송곳니 두 개가 더 빠졌었는데 그것도 뒤늦게 병원에 갔을 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빨이 많이 빠져도 난 그저 노화의 과정이라고만 생각했고 이제는 양치할 필요가 없다고 좋아했던 것도 같다. 그 벌을 이제야 받고 있다. 

     

    - 고양이는 아픔을 정말 너무 잘 숨긴다.

    고양잇과 동물은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입안이 다 헐고 곪아 있을 줄은 정말 하나도 몰랐다. 손을 대면 싫어해서 무리해서 입 안을 확인하지 않은 나의 게으름과 안일함 탓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정말 표시가 나지 않았다. 얘가 조금 힘이 없어 보이네, 그루밍을 좀 안 하네 싶으면 무조건, 당장 병원에 데려가는 게 맞다. 당시에 직장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다는 핑계로 너무 나 자신에만 몰두해 있어서 오스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고양이의 행동에 변화가 있으면, 고양이는 그 보다 훨씬 더 많이 아플 수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 고양이에 쓰는 돈은 평소에 아끼지 말자.

    평소 병원비를 아끼던 나는 벌을 받았다. 오스카가 암 진단을 받은 날 수의사가 바로 안락사를 권했을 정도로 심한 상태였지만 난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마음에 이것저것 약도 사고 사료도 바꿔보고 했다. 돈의 액수가 상관이 없어졌다. 오스카를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 있다면 얼마라도 쓸 수 있었다. 차라리 수술을 해서 고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액수가 얼마라고 해도 했을 것이다. 수술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도록 몰랐던 내가 받는 벌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마음 한편에 가지고 갈 죄책감과 미안함이다. 사료도 그렇다. 좀 더 좋은 걸 먹일 걸. 아프고 나서 입 상태가 나빠지면서 아무리 고급 사료를 가져다줘도 먹지 못하는 오스카를 보며 너무너무 미안했다. 평소에 맛있는 걸 먹일 걸, 이제 와서 먹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먹으라고 들이미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캔 사료를 너무 많이 먹여서 오스카를 너무 빨리 보냈나 싶다. 캔 사료가 고양이에게 안 좋은지도 몰랐다. 가격이 싸고 잘 먹으면 계속 그 사료만 샀다. 고양이는 작아서 사료값이 적게 든다고 좋아했던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 나의 사랑은 턱없이 부족했다

    나의 사랑, 내 기쁨 덩어리. 온갖 미사여구는 다 갖다 붙여서 너의 이름을 불렀지만 너를 향한 내 사랑은 너무 부족했어. 네가 나이가 들면서 가끔 돌발행동을 할 때마다 치매가 온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지만, 너랑 더 놀아주고 시간을 보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네가 있어서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네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으면, 혼자 있게 내버려 두었다. 내가 늦게 집에 올 때면 현관에서 기다리면서 엉덩이 팡팡을 해달라고 조르는 너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어. 왜 그랬을까? 네가 있는 일상에 무뎌져서 그랬을까? 자신 안에 매몰되어서 너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던 난, 도대체 뭐 대단한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신경 쓰느라, 네가 숨죽이면서 아파하는 걸 너무 오래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흘리는 눈물도, 느끼는 슬픔도, 네가 육체적으로 겪어야 했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텐데, 떠나는 날까지 왜 네가 아파야 했는지 이유를 모르던 너에게 너무 미안할 뿐이야. 난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믿어왔지만, 그 사랑의 크기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었어. 나의 이기심이 너무 크다는 걸 이제야 깨달아서 황당하고 놀랍고 괴롭다.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한다 해도, 이런 식으로 너를 떠나보내면서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의 비극이다. 

     

    - 이별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반려동물들과 이별한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오스카와의 이별을 상상해보곤 했다. 오스카가 날 물거나 할퀼 때마다 미운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오스카가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어서 늘 서운했다. 날 좋아는 하는 건지,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고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물론 슬플 것은 알았지만 그 슬픔이 얼마나 클지는 상상도 못 했었다. 오스카가 만약 더 오래 살다가, 비교적 큰 고통 없이 떠났다면 덜 슬펐을까? 죄책감과 미안함 속에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렇게 괴로운 것일까?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오스카가 떠오르면 왈칵 울음이 터진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울고 있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다가도,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슬픔이 끓어오른다. 울어도 울어도 오스카는 돌아오지 않고, 나의 무관심과 무책임함을 용서받을 길은 영영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도 싫지만, 오스카에게 미안해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면 그게 더 싫을 것 같다. 집 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면 오스카인가 순간 착각하다가 이내 아님을 깨닫는다. 집 안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자고 있는 오스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평생 울어야 한다고 해도, 평생 미안해하고 그리워해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10년 넘는 세월 나와 같이 생활하던 존재를 떠나보내는 것이 힘들지 않을 리가 없다. 

     

    -난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15년 전 무작정 오스카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학생이었던 난 아르바이트비를 쪼개서 사료와 병원비를 충당하느라 돈을 아껴야 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서도 내 씀씀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보니 난 그냥 인색한 인간이었다. 한 생명을 위해서 아낌없이 베풀 돈도 여유도 없는 인간. 그러면서도 고양이를 키운다고,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고양이 키우는 전문가라도 된 듯 사람들에게 고양이 키우는 것을 추천했었다. 아무리 힘들 때도, 고양이를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돌볼 수 있는 여유와 부지런함이 있는 사람만 고양이와 함께 살 자격이 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내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사랑의 그릇이 큰 사람만이 고양이와 함께 인생을 보낼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을 미처 몰랐다. 고양이의 아름다움, 사랑스러움, 그 부드러운 털의 촉감, 만족감이 넘치는 그릉거림. 이 모든 사치들을 거저 누리려고 하면 안 된다. 

     

    - 인생은 이별과 슬픔의 연속이다.

    오스카와의 이별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거의 이야기하지 못했다. 비슷한 경험이 없다면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어셔였다. 또한 더 가까운 사람들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슬픔은 아주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이별의 슬픔 속에 있었을 때,  충분히 이해하고 위로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기억났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내가 모르는 아픔과 이별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오스카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인지했다. 앞으로도 내게는 피해 갈 수 없는 이별과 슬픔이 남아있다는 인생의 이치가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 내 가슴에 묻었다.

    오스카를 보내고 한동안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왈칵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심리상담을 받으려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했는데 어쩌면 어떤 상담도 약간의 도움이 될 뿐 오직 시간만이 희석시킬 수 있는 감정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어리석은 실수로 인한 오스카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이렇게 글을 쓰거나 이전보다 덜 이기적으로, 더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타투를 하지 않아도 오스카는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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