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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벌새 (2018) 리뷰 (약스포)
    영화•드라마•애니•만화 2020. 7. 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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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왜 벌새일까?

    매불쇼에서였던가? '벌새'라는 영화가 좋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었다. 그 후에도 여기저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몇 번 언급된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소녀의 성장기라는 키워드만 알고, 줄거리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보기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서야 이 영화의 배경이 2020년 즈음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아직 없었던 시절, 일요일 오후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 나른하고 지루하던 느낌의 일상을 반복하는 주인공 '은희'. 영화 속 뉴스는 1994년이라고 날짜를 알려 주었다. 은희는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날라리'로 낙인이 찍혀있고 집에 가면 오빠와 아빠에게 시달려 맘 편하게 쉴 곳이 없다. 그나마 다른 학교 다니는 남자 친구와 한문 학원에서 만나는 절친, 이 두 사람이 그나마 은희가 행복과 안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그 두 사람과의 관계가 삐걱일 때는 새로운 한문 학원 선생님인 '영지'에게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열게 되고, 여자 후배 '유리'가 수줍게 표현하는 호감으로 일상을 버텨나간다. 

    1994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김일성의 사망,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이 뉴스들 만큼 은희의 일상도 다사다난했고 생사를 오갔다. 은희의 일상이 얼마나 위태로웠던지 수술을 위해서 잠시 입원해 있던 병원이 오히려 은희에게는 안식처로 느껴졌다. 상처가 남을지도 모르는 꽤 큰 수술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친절한 같은 병실의 환자들, 자신을 걱정해주는 부모님과 친구들의 병문안, 오빠의 폭력이 없는 곳에서의 평안함이 있는 병원이 오히려 좋았다. 퇴원하는 날 은희는 병실을 나서기 전 몇 번이고 인사하고 또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집에 다시 돌아오니, 그 전의 답답함이 그대로 남아있다. 오빠는 다시 은희를 때리고 은희의 고막이 찢어진다. 치료를 해주던 의사가 증거로서 진단서가 필요하면 말하라고 한다. 알았다고 대답하지만 은희는 신고하지 않는다. 서울대에 갈지도 모르는, 아빠의 희망인, 똑똑한 오빠이기 때문이다. 그 후 큰 사고로 은희와 은희의 언니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다. 더 이상 뉴스 속의 사건이 아닌, 개인의 비극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일상은 흘러가고 좋은 일도 조금씩 생겨나며 다시 웃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은희는 성장해간다. 아니, 살아남아 간다. 살아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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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학원 선생님 역의 '김새벽' 배우의 대사와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 속 보물 같던 장면들 몇 가지:

    -마음이 우울할 때면 손을 보라던 한문 학원 영지 선생님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손이지만 움직여보면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다. 그것이 경의롭고 신비해서 힘이 된다던 말에 나도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내 손을 보게 되었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명심보감의 교우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의 뜻을 설명해주는 김새벽 배우의 목소리가 너무 쓸쓸해서 마음에 콕 박혔다. 이 설명을 듣는 은희는 바로 영지 선생님의 외로운 영혼을 알아보았던 것 같다. 

    -절친이었지만 싸워서 서먹서먹해진 두 학생에게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잘린 손가락을 보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노래를 불러주는 영지 선생님. 그 상황과는 너무도 동떨어지고 비극적이어서 두 소녀의 상황이 너무나 사소하게만 느껴졌는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읊조리기를 마친 후에는 혼자 웃어버린다. 

     

    제목이 왜 벌새일까 생각해보았다. 사진을 검색해보니 아주 작은 새가 빠르게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주인공인 은희는 너무도 작고 무력한 존재로 표현된다. 그 작은 날개를 수도 없이 움직여서 버둥대어 보지만 그 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것 같다. 그 작은 부리로 꽃에서 꿀을 빨아먹는다. 어찌어찌 생존해나간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너무도 안타깝고 애가 탄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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