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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 ·페스코 ·비건
    건강 2020. 1. 4. 00:03

     

    https://li0.rightinthebox.com/images/384x384/201903/vjfrhx1552622485240.jpg

    6월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시내에 쇼핑을 나갔다. 길거리에서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스크린을 들고 벤데타 가면을 쓰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번 지나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멈춰 서서 영상을 보는데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도살장 안에 설치된 몰래카메라 영상이었다.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의 잔인함에 너무 놀라서 보고만 있는데 가면을 쓰지 않은 시위대 한 명이 와서 소책자를 주며 말을 걸었다. 평소에는 설문 조사나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피하는 편이지만 그때는 너무 놀라서 얼음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소와 돼지 같은 대형 가축들 뿐만 아니라 알을 낳지 못하는 수컷 병아리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설명을 듣는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일 년 내내 우유가 나오도록 각종 촉진제와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는 젖소 이야기도 들었다. 그날 집에 돌아간 이후로 지금까지 육류, 유제품, 달걀을 먹고 있지 않다. 

    어릴 때부터 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삼겹살은 없어서 못 먹었다. 소고기보다는 돼지고기를 좋아해서 제육볶음이면 밥을 몇 공기라도 먹을 수 있었다. 닭고기도 좋아해서 닭도리탕? 맵게 양념된 닭볶음탕도 자주 먹었다. 몸살이 나면 엄마가 해주시는 삼계탕 닭죽을 먹어야 기운을 차렸다. 어렸을 때부터 거의 매일 우유를 마셨고 커피와 차에는 꼭 우유를 넣었다. 작년 초부터는 근육을 늘리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삶은 달걀을 몇 개씩 도시락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는 순대를 꼭 꼽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음식을 6개월째 전혀 입에 대고 있지 않다. 이런 변화에 가장 놀라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솔직히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없었는데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독했었나?

    https://namu.wiki/w/%EC%B1%84%EC%8B%9D%EC%A3%BC%EC%9D%98

    꽤 크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그나마 오래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철저한 비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건들은 모든 동물성 음식을 식단에서 제외하는데 나는 생선과 조개류를 포함한 해산물을 먹고 있다. 채식과 해산물을 포함하는 식단을 페스코라고 한다는데, 페스코들은 나와 달리 유제품과 난류는 먹는다고 한다. 나무 위키의 채식주의에 대한 문서에 따르면 '비덩'이라는 개념도 있다고 한다. 아닐 비非에 덩어리 덩 ㅋㅋ 한국은 워낙 육수 베이스 국물요리가 많아서 덩어리만 안 먹고 육수는 먹는다는데 이거 꽤 솔깃하다. 아무튼 나처럼 채식과 해산물을 먹고 유제품과 달걀은 제외하는 식단은 주류가 아닌 것인지 딱 떨어지는 명칭은 없는 듯. 편의상 반 ·비건이라고 불러본다. 

    잔인한 동영상에 충격을 받아서 시작한 것이라서 일단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물들은 식단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었다. 소도 그렇고, 돼지, 심지어 닭들도 직접 접하거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걸 보면 개나 고양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지긴 했었다. 개나 고양이는 안 먹는데, 왜 다른 동물들은 차별을 하는가? 그럼에도 앞 뒤가 맞지 않는 나의 가치관을 찬찬히 정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생각 좀 하고 살자!  오랫동안 찜찜하던 참에 잘 됐다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축들에게 얼마나 많은 양의 항생제가 투여되고, 또 얼마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키워지고 도살되는지 알게 되면서 건강을 위해서도 나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다큐멘터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출처: 유튜브 What the Heath

    다큐멘터리에도 나와있지만 세계적 통계롤 볼 때 인간에게 쓰이는 항생제의 양보다 가축에게 쓰이는 총 양이 몇백 배는 된다고 한다. 그런 고기를 먹고 건강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무리가 아닐까? 거기다가 영양학자들에 의하면 동물성 단백질이 몸에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식물에서 더 많은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말미에 한국 교포가 근력운동을 하면서 인터뷰를 하는데, 채식을 하면서도 엄청난 근육질 몸매와 근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구 상에서 가장 힘이 센 동물은 초식동물인 코끼리인데 왜 우리는 육식동물을 먹으면서 강해지길 바라냐고 질문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비건 식단을 시작하고 변화한 점

    건강 식단을 바꾸기로 결심한 며칠 후가 전에 예약해 두었던 혈액 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모든 항목이 기준치 이내로 나온 덕에, 채식을 하고 나서 변화되는 건강상태를 비교하기가 쉬웠다. 6개월이 좀 안돼서 지난달에 한 혈액검사에서는 아쉽게도 철분과 비타민D 수치가 낮게 나와서 보충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걱정이 되어서 보충제를 먹던 B12는 과다가 나와서 보충제는 끊은 상태. 의사가 뭐라고 할까 봐 식단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었는지 녹색채소를 많이 먹어서 철분을 보충하라고 하더라. 비건과 간헐적 단식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서 좀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으로서는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다. 

     

    체중감량 간헐적 단식을 6개월 정도 했을 때 정말 느린 속도로 3kg를 감량했었는데 반 ·비건 식단을 시작하고 나서 추가로 3kg를 더 감량했다. 그런데 연말에 정신줄을 놓고 팥빵을 처묵처묵해서 다시 3kg가 쪘다 ㅠㅠ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빵이나 간식이 생각보다 흔치 않아서, 발견하게 되면 신나게 먹게 된다. 

     

    비염 완치 중학교 때부터 날 괴롭혀오던 비염이 거의 사라졌다! 이건 전혀 의도치 않은 장점인데 아마도 유제품이랑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전에 비염에 우유가 나쁘다는 소리를 듣고 한 달 동안 우유를 끊은 적이 있었는데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해서 다시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었다. 현재는 우유 대신 두유를 마시고 있는데 (이제 좀 질리기는 하다. 아몬드 우유나 쌀 우유로 갈아타야 할 듯) 이제는 커피에 두유를 넣거나 빵이랑 두유를 먹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무튼, 날씨가 조금만 쌀쌀하거나 먼지가 심하면 어김없이 코를 풀고 티슈 한 박스를 순식간에 써버리던 나였는데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도 휴지를 쓸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코 안이 좀 건조한데, 늘 콧물이 흐르던 나에게는 정말 어색한 감각이 아닐 수 없다.

     

    먹을 간식이 없다 생각보다 우유와 달걀이 들어간 간식거리가 많아서 마트에 가면 성분표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엄청 좋아하던 초콜릿 쿠키, 칩스도 이제는 선택지에서 제외. 간식 사는 것이 힘들어지다 보니 점점 안 먹게 된다. 단점은 오랜만에 안심하며 먹을 수 있는 팥빵 같은 간식을 만나면 폭식을 하게 된다는 것. 그래도 전보다는 간식을 먹는 양이 줄다 보니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 것 같다. 간식에 들은 설탕도 적게 섭취하니까 좋은 거겠지? 간식을 안 먹어서 피부가 좋아지길 살짝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당분이 피부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이 있던데 진짜였나?

     

    외식할 때 선택의 폭이 좁다 식단을 바꾸고 나서 외식을 하는 빈도가 현저하게 줄었다. 주변에 채식을 하는 지인이나 가족이 없어서 누구를 만날 때 같이 먹을 음식을 선택하기가 좀 힘들다. 만날 때마다 마라탕을 같이 먹던 모임은 나 때문에 정체성을 잃었고 (내가 비덩에 끌리는 이유이다) 평소에는 감자기 락사나 월남국수가 먹고 싶어지면 외식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내 사랑 순대도 이젠 안녕이다 ㅠㅠ 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신기하게도 너무 먹고 싶어서 지금의 식단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직 6개월밖에 안돼서 그런가? 지인들과의 외식 횟수가 줄어들어서 내 협소한 인간관계가 더 협소해졌다는 생각이 살짝 들지만 사실 사람들 별로 안 만남 --;; 아무튼 맘 놓고 먹을 수 있는 외식 메뉴는: 월남쌈, 회덮밥, 초밥, 가락국수 정도겠다. 

     

    주변에게 설명해야 한다 지인들은 물론이고, 회사 동료들이나 학생들에게 내가 반 비건이 되기로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게 꽤 번거롭다. 나는 동물학대가 싫어. 넌 왜 채식 안 하니?라는 비판으로 들릴까 봐 요즘에는 건강을 위해서라고 짧게 말한다. 나름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몰랐던 그 사람의 면모를 본다. 과거의 나도 채식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어쩌면 불쾌했을지도 모를 질문을 했었던 것 같다. 반성 중.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잠깐씩 스쳐 지나가던 동물들에게 미안했던 감정들이 사라졌다. 내면의 모순이 정리되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일을 계기로 내가 평소에 하는 행동의 대부분이 아무 생각 없이 남을 따라 하는 것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식단 이외에도 재정립해야 할 가치들이 더 남아 있긴 하다. 지금까지 너무 긴 세월을 원칙 없이 살았던 것이 후회되는 만큼, 앞으로는 제대로 생각하며 살고 싶다. 

     

    앞으로 계속 지금의 식단을 유지하고 싶다. 일단 새해를 맞아서 올 해도 계속 이어가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없는 이상 평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몇 번 실수로 혹은 여행이나 파티 중 ,음식이 제한되어 있어서 육류와 유제품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맛있게 먹고 나서 그 다음 날 다시 평소의 식단으로 돌아갔다. 올해 한 해도 반 비건 식단을 유지해보고 나서 내 건강과 행복도를 다시 확인해볼 계획이다. 오늘도 우연히 육식이 노화의 적이라는 동영상을 봤는데, 올해부터 나의 노화가 지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채식이 오히려 노화를 촉진한다는 말도 있긴 하다. 아무튼 난 일단 이대로 쭉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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