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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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네가 알려주고 간 것들단상 2019. 11. 25. 22:33
아직도 고개를 돌리면 오스카가 근처에 앉아 있을 것 같다. 오스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후, 일상을 오스카에게 맞춰서 조정했었다. 오스카가 어딘가에 숨어서 낮잠을 자는 아침과 낮시간을 피해서,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대신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전에는 학교 일을 퇴근 후에도 도서관에서 몇 시간씩 하고 오곤 했었는데 오스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과감하게 도서관 가기를 멈췄었다. 15년 동안, 유학을 했던 4년 동안에도, 오스카의 존재는 나의 큰 일부였다. 자칭 타칭 애묘인이었고, 힘든 시간 동안에도 내게 감정적인 의지가 되어준 귀한 존재였는데, 요새 몇 년 내가 너무 소홀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오스카는 나를 떠나면서도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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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안녕, 나중에 만나자단상 2019. 11. 24. 17:39
어제는 학생들과 달리기 시합에 참가하느라 외박을 해야했었다. 전부터 약속한 것이기도 하고, 대타를 급하게 구하지 못할 상황이라 참가를 하긴 했지만 오스카가 아픈와중에 집을 비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학생들과 달리기 대회에도 함께 참가하느라 정신없이 보내서 오스카 생각을 많이 못했는데 동생에게 메세지가 와있었다.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짧은 문장이었다. 안락사를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생의 의도는 읽을 수 있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문득 문득 오스카가 떠올라서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나는 이렇게 건강해서 뛰어다니는데 우리 오스카는 집에서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다... 결단을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를 되풀이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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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좋은 날, 안 좋은 날단상 2019. 11. 3. 05:17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니 오스카가 보이지 않았다. 햇볕이 좋은 날이라 뜨끈하게 덥혀진 아스팔트에 몸을 붙이고 앉아있나 싶었지만 없었다. 집안과 마당을 뒤져봐도, 옆집과 앞 길에 나가봤지만 보이질 않았다. 고양이는 마지막이 왔다는 걸 감지하면 아무도 없는 곳에 숨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제 상태는 꽤 좋은 편이었다. 뒤늦게 구입한 약이 효과가 있는 건지 요 며칠은 '좋은 날'이었다. 독특하지만 독하지는 않은 냄새의 약인데 스포이드로 한 방울씩 두 번 주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오스카가 몸부림을 치거나 입에서 흘릴 경우가 있어서 조금 더 주고 있다. 자연성분으로 되어있다니 조금 많이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 입에서 묻어 나오던 피도 거의 안 비치고 방안에만 있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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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아직은 못하겠다단상 2019. 10. 30. 19:14
오스카가 구강암이라고 알게 된 것이 이주가 조금 넘었다. 첫 며칠은 눈물만 나왔다. 그동안 오스카의 작은 변화들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는 자책감에 너무 괴로웠고 지금도 그렇다. 수의사는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 난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동물병원에 데려간 것이었는데 수술을 권하지도 않고 그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 몰랐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은 다 내게 원인이 있다. 작년 이맘때부터 직장일이 너무 힘들어서 번아웃 상태였고 내 관심은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내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궁리하기 바빠서 오스카가 조금씩 살이 빠지는 것도, 입안이 곪았던 것도 몰랐다. 내가 만지는 것을 싫어해서 도망을 가더라고 붙잡고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오스카가 싫어한다는 핑계로, 할퀴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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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짧은 행복단상 2019. 10. 17. 02:00
'고양이가 침을 흘리는 것은 절대 정상이 아닙니다. 당장 병원에 가세요' 라는 글귀를 읽고서야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다음날 저녁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평소에 치매와 노화의 징조가 보이기는 했지만 심해보이지는 않았는데 최근 몸에 뭔가를 많이 뭍히고 다니는게 신경이 쓰이긴 했다. 알고 보니 침을 줄줄 흘리고 다녀서 발과 몸에 다 뭍었던 것이었다. 난 그건 것도 모르고 작년에 빠진 이빨들 사이로 침이 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인터넷에 검색을 하다가 위에 글귀를 읽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의사는 오스카를 보더니 금새 표정이 안좋아졌다. 의사가 손가락으로 오스카의 입을 벌리니 그제서야 심각한 상황의 잇몸이 보였다. 왜 난 몰랐던 걸까? 의사는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더 이상 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