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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 작곡가 HEN
    음악•소리•팟캐스트 2020. 4. 8. 22:32

    작곡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사람으로서, 가끔 이게 내가 만든 곡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치도록 부러운 곡들이 있다. 작곡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가 오래간만에 다시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곡이 있다. 드라마 '남자 친구' OST 중 이소라가 불렀던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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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했던 이유의 8할은 이 노래이다.

    이소라의 담백한 창법과 감미로운 피아노 반주가 부드럽게 감기는 노래. 거기다가 가사는 극도록 로맨틱하다. 가끔 음악을 들으면 맛이나 색깔로 비유하고 싶은 기분에 빠지는데, 이 곡은 부드러운 밀크티나 핫 초콜릿. 추운 가슴속을 따뜻하고 달콤하게 채워주는 향기가 떠오른다. 내 취향을 완전히 저격해 버린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은 누구인지 당장 알아내야 했다. 작곡가의 이름은 HEN. 일본어로 이상하다는 뜻인데, 음악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혹시 영어로 암탉이라는 의미로 지은 예명인 걸까? 유튜브에 작곡가의 채널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침, 이 곡을 해설한 영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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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 치는 손가락만 계속 쳐다보게 된다. 너무 잘침.

    와, 우선 피아노를 진짜 잘 친다. 또 다른 영상들을 보고 알게 된 건데 노래도 잘해서 싱어송 라이터이다. 곡을 쓸 때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전개를 시키는 것도 멋졌다. 난 그냥 좋은 멜로디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편인데, HEN은 여러 코드를 자유자재로 조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스타일인듯하다. 다른 곡의 설명을 봐도 비슷한 걸 보니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 같다. 

    다른 곡들을 들어본 결과, 잔잔한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곡들 속에서 정서적으로 지극히 안정된 작곡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음악을 잘하려면 예민하고 우울한 기질이 필수라고 생각해서 삐뚠 성격을 정당화시켰었던 난 뭔가 ㅋㅋ

    오늘 오랜만에 다시 그녀의 음악을 들으려고 유튜브를 검색했는데, 그 사이에도 활발하게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흔적들을 발견했다. 무려 화재가 되었던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요즘 방영 중인 '하이바이, 마마!'라는 드라마 OST에 그녀의 곡들이 포함되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그녀가 노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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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디도 좋지만 애틋한 가사에 가슴이 저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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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만 나오나 했는데 아니었음! 

    아쉽게도 두 작품이 내 취향이 아닌 관계로 보지 않아서 작품 속에서의 음악을 감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음악만 들어도 곡에서 어떤 감정선을 이끌어내고 부각하는 역할일지 상상이 갔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그녀의 목소리가 곡에 입혀진 것이 탁월한 선택이라고 느껴졌다. 화려한 기교가 필요 없는 안정적인 음색이 가사의 감성을 넘치지 않게 담아내고 있다. 그녀의 곡이기에 어디까지 속내를 꺼내 보일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간에 굳건히 중심을 잡고 있다. 아슬아슬 외줄 위의 균형 잡기가 아닌, 두 발로 지면을 딛고 세상을 바라보는 담담함이 느껴진다.

    내가 HEN의 음악에 끌리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과 끌림이 이유이지 싶다. 절절한 로맨틱한 감성, 잔잔한 파도같이 안정된 정서, 그리고 엄청나지만 절제된 작곡의 재능. 내가 원하지만 손에는 닿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질투로 시작해서 알게 된 그녀의 음악이지만, 음악을 듣고 있자면 그런 감정은 눈이 녹듯 사라져 버린다. 담담하게 노래하는 일상의 풍경과 기쁨에서 뭔가 단단한 것이 느껴진다. 그게 그녀의 인생철학이든, 종교이든, 아니면 타고난 온화함이든 상관없다. 듣고 나면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하는 곡들을 오래도록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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