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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상 - 이번주 행복의 순간들
    단상 2020. 3. 13. 22:27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불안한 요즘이지만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도 몇 개의 행복의 알갱이들을 발견했다. 여기에 주워 담아본다. 

    - 옆집 강아지 

    옆집에는 가족의 사정상 며칠에 한 번씩 놀러 오는 강아지가 있다. 자고 가기도 하는데 마당에 혼자서 자는 게 익숙하지 않은지 밤새 짖는 날도 있었다. 개의 목소리로 봐서 아직 성견이 안된 것 같다고 짐작만 했지만 담장이 높아서 몰래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집 앞에 주차하고 내리는데 옆 집 아저씨가 황급히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집 앞에 서계시던 엄마는 개가 도망갔다고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같이 개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먼 여행을 떠난 우리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가 떠올랐다. 어디로 갔는지, 다친 것은 아닌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면서 헤매고 돌아다녔었지. 그 아저씨는 다행히(?) 울고 있지는 않았지만 무척 다급해 보였다. '얘가 차 무서운 걸 몰라서 길 건너면 큰일 나요'. 우리 집 앞마당을 뒤져보았지만 개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래요?' 어느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물어본다. 몇 사람이 집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큰일이 났나 싶었겠지. '옆 집 개가 도망갔대요. 아, 저기 있네요!' 개는 옆 옆 집에서 튀어나와서 멀리 뛰어가고 있었다. 아저씨는 개가 도로에 나오지 못하도록 일부러 자기가 도로에 서서 개를 인도로 몰려고 하는 듯했다. 그러자 갑자기 개가 우리 집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옆에 서있던 아주머니는 '어, 나 개 무서워' 하면서 도망가고 난 쭈그려 앉아서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와!'. 무슨 생각인지 그 개에게 친한 척을 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그 개가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베이지 색의 곱실거리는 털에 귀가 긴 강아지. 신이 나서 혀를 내밀고 나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난 마치 내 강아지인 양 품에 껴안아서 만져주었다. '개 목걸이를 잡아요!' 아저씨는 다급하게 외치면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개가 도망갈까 봐 걱정하셨던 모양. 난 개 목걸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개를 계속 쓰다듬었다. 아저씨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스크러비'라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천방지축 강아지는 아저씨랑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저씨가 잡으러 오니까 난 도망가야지~' 이런 개의 심리를 알 턱이 없는 아저씨는 개가 왜 자꾸 집을 탈출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투덜거리고는 스크러비를 안고 사라졌다. 아... 아쉬웠다. 조금 더 놀아줄 수 있는데... 내가 불렀을 때 내 품에 달려오는 강아지를 인생에서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그 짧은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그 후 매일 퇴근 후에 옆 집을 둘러보지만 개는 다시 집을 떠난 모양이다. 다음에는 우리 집으로 탈출해 주렴.

    - 언니처럼 좋아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다른 어떤 직업도 부럽지 않은 순간들이 간혹있다. 학생들에게 무한한 애정표현을 받을 때이다. 진심이 느껴지는 손편지, 애정과 자부심이 담긴 서투른 그림. 그런 소중한 선물들을 건네는 손길과 눈길을 볼 때면, 내가 받아도 되나 싶도록 황송해진다. 오늘도 그런 엄청난 사랑을 받은 날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서 짧게 수다를 떨다가 갔는데, 다른 학생이 다 가기를 기다렸다가 남은 한 여자아이가 내게 귓속말을 하려 했다. '아무도 없는데 그냥 말해도 돼.' 하지만 그 아이는 주저하면서 그래도 귓속말을 해주었다. '나 선생님이 좋아요. 진짜 언니처럼 좋아요.' 아니, 이런 고백은 처음이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같이 진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말이 아닌, 언니처럼 좋아요라니! 언니가 없어서 언니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인 걸까? 사실 엄마처럼 좋다고 말해도 되는 나이차이지만, 언니에 비교해줘서 더 좋았던 것 같다ㅋㅋ 그 아이가 수줍게 해준 이 고백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다. 나도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 것을 이 아이에게 확인받은 기분이다. 내가 더 사랑해 줘야지. 

    - 텅빈 주차장

    요 며칠은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작년에 아픈 고양이를 간호하면서 생긴 습관인데, 고양이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라는 생각에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 중이다. 보통 7시 반 정도에 도착을 하면 나보다 먼저 와 있는 한 두대의 차를 보면서 혀를 내두른다. 도대체 몇 시에 온 거야? 그러다가 하루는 텅빈 주차장에 내가 첫번째로 주차를 하게 되었다. 제일 좋아보이는 자리에 여유있게 몇 번이고 후진을 하며 주차를 했다. 아무도 없으니 눈치안보고 주차해서 너무 좋았다. 내가 혀를 내두르던 바로 그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 그것 참 별 것 아닌데, 나 자신이 조금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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