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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호주에서 자가격리 중
    단상 2020. 5. 6. 20:03

    2주의 방학이 끝나고 지난주부터 NSW주 학교들이 개학을 했다. 아직까지는 온라인 수업이지만 교사들은 순번을 정해서 출근을 하는 중이다. 드디어 다음 주부터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 등교를 하게 된다. 학교마다 독자적으로 규정을 정할 수 있어서 우리 학교는 교사들은 주 3일 출근을 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순차적으로 학생들의 등교일을 늘려간다고는 하지만 한 교실에 10명의 학생들만 있을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학생들이 일주일에 이틀 이상 등교를 하게 되면 교실이 모자라게 되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 결국 주 1일 등교에서 바로 주 5일 개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NSW주 수상이 5월 말까지 정상수업을 하도록 촉구했기 때문에 앞으로 2주간 학교에서 확진자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5월 말부터는 평상시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벌써 세상은 달라졌다. 학생들이 서로의 필기구를 빌려 쓰거나 학교의 비품을 공동으로 나눠서 사용하는 일은 이제 주의 사항이 될 것이다. 자기 물건은 자기만 쓰도록, 그게 이기적인 게 아닌 타인의 건강을 배려하는 행동이 된 것이다. 앞으로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걱정 반 호기심반 신경이 쓰이지만, 닥쳐봐야 아는 일이기에 시간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재택근무를 삼주 정도 하고 있지만 중간에 방학이 2주가 껴서 한 달 넘게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느낀 점들 몇 가지 기록해본다.

    업무적:

    - 온라인 수업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기존의 수업 방식을 다 갈아엎어야 할 것 같다. Zoom을 이용해서 재미있게 수업을 하려고 해도 학생들의 참여도가 낮다. 강제성이 없으니 학구열이 적은 학생들은 '이해가 안돼요'라는 핑계로 잠수를 탄다. 학생들을 컴퓨터 앞에 앉힐 무언가가 필요한데, 아직 못 찾았다. 

    -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해서 1년이 채 안된 학생들에게는 온라인 수업이 특히 부적절하다. 언어는 환경 속에서 부딪히며 일상생활 속에서 배우는 게 확실히 효과적이다. 

    개인적:

    - 집순이인 나에게 재택근무가 잘 맞는다.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마음이 한없이 평온하다. 물론 교사로서 재택근무는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혹시 이직을 하게 된다면 재택이 가능한 직업을 골라야겠다. 사실, 조만간 거의 모든 직업이 재택화 될 것 같긴 하다. 

    - 외출을 안 하니 당연하지만 지출이 상당히 줄었다. 주유비, 외식비는 물론, 견물생심이라 그런가 사고 싶은 물건, 먹고 싶은 음식이 많이 줄었다. 화장품이나 옷도 사람을 안 만나서 그런지 필요를 못 느낀다. 남을 의식한 지출들에 대해서 반성하게 된다. 

    - 하지만 좋은 컴퓨터나 전화기에  투자해야겠다는 마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나의 행복과 여가에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두 기기. 너무 의존적이 되는 것이 살짝 두렵다. 내일 저녁에 정전이 예정되어있는데 잘 넘길 수 있을까?

    -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스크린 타임을 줄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 치과를 못 가니 양치질을 열심히 하게 된다. 치과에서 예약을 취소하는 전화가 왔다. 영업하는 치과로 바꿔야 하나. 

    - 일주일에 한 번 가던 중국어 클래스를 안 가니 중국어를 손 놓게 되었다. 물론 혼자 공부하려는 노력을 해봤는데 교실에 2시간씩 앉아있던 시간이 사라지니 공부량이 급격히 하락. 거기다 출퇴근 길에 듣던 중국어 회화 mp3를 일상에서는 듣지 않아서 감을 다 놓쳐버렸다. 게다가 집에만 있다 보니 동료 교사들이나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써먹어 볼 기회가 없다. 거의 일 년간 열심히 쌓았던 모래성이 한 달 사이에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중요한 동기부여는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것 같다. 내가 수업을 할 때도 기억해야 할 점이다. 

    - 운동도 마찬가지로 쌓아놓았던 모래성이 무너져 내렸다. 체중도 7kg 감량했었는데 요요가 와서 3kg 다시 늘고, 동네 세 바퀴는 숨도 안차게 거뜬했던 체력이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가쁜 지경에 이르렀다. 자가격리를 핑계로 운동을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뭐든 꾸준히 유지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냥 안부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생긴 힘든 상황을 털어놓아서 위로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하면서도 나의 질문이 위로가 아닌 상처를 들어내는 것 같아서 먼저 연락을 못하고 있다. 그쪽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힘든 상황이 계속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한편, 연락이 뜸했던 지인과는 다시 긴 메일을 주고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재택근무 중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는데 옷이 참 중요하다. 일을 시작할 시간에 출근을 할 때 입는 외출복을 입고 컴퓨터를 마주한다. 물론 화상 채팅으로 학생들을 만날 때를 위한 것도 있지만, 약간 불편한 옷을 입음으로써 마냥 늘어지지 않게 된다. 어떤 학교는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 동안에는 집에서라도 교복을 입으라고 추천한다고 하는데, 나쁘지 않은 생각인 듯. 

    - 나의 생존과 행복에 꼭 필요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돌고 돌아서 차선으로 선택했던 교사라는 직업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도 지금은 참 다행이라고 느낀다. 돈, 가족, 건강 그리고 인터넷만 있으면 난 그럭저럭 살 수 있다. 

    -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이기적인 존재였다. 나와 내 가족이 괜찮다고 해서, 코로나로 실직을 하거나 돈, 건강 혹은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쉽게 잊어버리고 일상을 보낸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나는 이대로  나만의 안위를 위해서 인생을 보낼 것이다. 건강의 위협이 있는데도 의료봉사를 하고, 이웃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면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진다. 작은 일들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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